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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도 안 되니까요" 탕핑족과 쉬었음 청년을 만드는 능력주의의 배신

paideia 2026. 5. 29. 18:15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SNS)를 뜨겁게 달군 졸업 사진들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 가운을 입은 청년들이 상큼하게 학사모를 던지는 대신,

길바닥이나 계단, 쓰레기통 옆에 시체처럼 누워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들입니다.

 

이 기괴한 유행의 중심에는

오늘날 중국 젊은 세대의 심리를 관통하는 키워드,

'탕핑족(躺平族)'이 있습니다.

 

1. "노력해도 안 되는데 왜 뛰어?"… 탕핑족의 등장

'탕핑(躺平)'은 한자 그대로 '바닥에 평평하게 납작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 지친 청년들이

승진,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기존 세대가 추구하던 성공 방정식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며

침대 위에 눕기를 선택한 현상을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백수들의 투정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노력 가성비'가 최악으로 치닫는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극단적인 무한 경쟁을 뜻하는

'네이쥐안(内卷)'이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아무리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여도

개인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줄어들고,

남을 짓밟아야 겨우 제자리를 유지하는

숨 막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중국 IT 업계의 가혹한 노동 환경인

'996 문화'에 영혼까지 갈아 넣었지만,

대도시의 집값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살 수 없을 만큼 폭등했습니다.

 

부모 세대의 막강한 자산 없이는

자력으로 신분 상승을 하거나

평범한 삶을 꾸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결국 성공이라는 희망 고문에 지친 청년들은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기계 부품처럼 소모되다 버려질 텐데,

내가 왜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하지?"

그리고는 "더 이상 이 불공정한 트랙에서 뛰지 않겠다"

스스로 멈춰 서서 납작 눕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2. 연애도, 결혼도 패스! '4불(不)주의'의 저항

탕핑족의 생활 방식은 매우 철저합니다.

이들은 이른바 '4불주의'를 실천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 주택 구매를 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소비를 극도로 줄이고,

한 달에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월 수십만 원 수준)만

아르바이트로 번 뒤, 나머지 시간은 침대에 누워 쉬는 데 씁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기력증이 아닙니다.

국가와 자본이 요구하는 성장 프레임에 협조하지 않겠다

'적극적인 수동적 저항'의 성격을 띱니다.

 

집단주의와 희생을 강조하는 사회를 향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무소음 시위인 셈입니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서

"이미 망가진 인생, 더 망가지든 말든 내버려 둔다"

'바이란(摆烂)' 정서나,

 

취업을 포기하고 부모님 집안일을 도우며 급여를 받는

'전업자녀(专业儿女)'라는 웃픈 형태까지 속출하고 있습니다.

 

청년층의 좌절감이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그냥 쉬었음' 청년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셨다면 정확합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통계청 조사에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한국의 '그냥 쉬었음' 청년이나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 역시

본질적으로 똑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문턱(대기업, 공공기관)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고

고용 시장은 경력직만 선호합니다.

 

눈높이를 낮춰 가기엔 미래가 보이지 않고,

계속 도전하기엔 문턱이 너무 높아

지쳐버린 청년들이 잠시 구직을 단념하고

방 안으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주류 사회는

종종 이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

"눈이 너무 높다"며 개인의 탓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곤 합니다.

 

그래야만 시스템의 모순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일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성장 동력을 마비시키고

인구 절벽을 재촉하는 '체제적 재앙'이 됩니다.

 

4. 샹뱌오의 경고, '주변의 상실'이 만든 비극

세계적인 인류학자 샹뱌오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심층적인 원인으로

'주변의 상실'을 꼽았습니다.

 

스마트폰과 배달 앱,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아주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내 반경 500m 이내에 있는 이웃, 골목길,

동네 공동체 같은 '인간적 완충 지대(주변)'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지적입니다.

 

각자도생의 냉혹한 사회에서 취업 실패나

번아웃이라는 충격이 오면,

과거처럼 이를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해 줄 이웃이나 공동체가 없습니다.

 

거대한 시장의 풍파가 개인에게 곧바로 다이렉트로 꽂히니,

청년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기제로

'내 방 침대'라는 가장 좁은 공간으로 후퇴해

문을 잠그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쉬었음' 청년들은

그나마 부모 세대의 경제적 지원이라는

'완충 장치(버퍼)' 덕분에 방 안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버퍼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은퇴하고 자산이 고갈되면,

우리 청년들도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중국처럼 부모 연금에 기생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론: 잔소리가 아닌 포옹이 필요한 지금

중국의 탕핑족과 한국의 쉬었음 청년들이

온몸으로 보내고 있는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이 시스템은 고장 났어요. 우리는 더는 달릴 수 없습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노력하라"거나

"근성을 가져라"라는 낡은 훈계가 아닙니다.

 

한 번 경쟁에서 미끄러져도 낙오자가 되지 않는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짜는 것,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에서 벗어나

서로를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주변'의 관계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청년들이 다시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려면,

먼저 그들이 지쳐 누워 있는

그 차가운 바닥을 따뜻하게 다져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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