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타인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되며,
오직 실질적인 피해(해악)를 줄 때만 제한할 수 있다"
이 원칙을 들고
지금 당장 우리의 스마트폰 속 세상으로 들어오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이버 렉카'들의 가짜뉴스와 혐오 조장,
그리고 알고리즘에 갇혀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현실을 보며 우리는 묻습니다.
"이게 정말 표현의 자유인가? 이들을 그냥 놔두는 게 맞는가?"
1. '사이버 렉카'와 가짜뉴스 : 표현의 자유인가, 인격 살인인가
조회수를 위해 타인의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폭로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교묘하게 짜깁기해 퍼뜨리는
'사이버 렉카'들이 활개를 칩니다.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정신적 불쾌감'을 넘어,
한 인간의 사회적 생명과 인격을 철저히 짓밟는
'실질적인 해악(Harm)'을 끼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해악 원칙'을 대입해 봐도,
이런 악의적인 폭로는
자유의 범위를 넘어선 범죄 행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국가나 거대 기업이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까지 검열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다
오히려 더 큰 감시 사회를 초래할 위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2. 알고리즘과 확증편향 : 혐오가 돈이 되는 세상
현대의 혐오는 과거보다 훨씬 은밀하고 강력합니다.
바로 알고리즘이 만든 '확증편향' 때문입니다.
유튜브나 SNS는 우리가 분노할 만한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합니다.
사람들은 같은 혐오와 편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생각을 증폭시키고,
어느새 그들만의 세상에서 혐오표현은 '당당한 정의'로 둔갑합니다.
알고리즘은 혐오를 연료 삼아 더 크게 타오르고,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더 편협한 세상에 갇히게 됩니다.
3. 계정 정지와 마녀사냥 : 정의로운 심판인가, 또 다른 검열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중과 플랫폼(유튜브, 포털 등)은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튜버의 계정을 수익 정지시키거나 영구 퇴출하고,
커뮤니티에서 차단하는 이른바
'노 플랫폼(No Platform)' 혹은 '캔슬 컬처' 운동입니다.
- "정의로운 방어벽이다" (찬성 입장):
사회를 좀먹는 가짜뉴스와 혐오 조장자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꼴입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그들의 무대(플랫폼)를 빼앗는 것은
정당한 사회적 방어라는 논리입니다. - "위험한 사적 제재와 검열이다" (우려의 입장):
하지만 워버턴을 비롯한 철학자들은 이 현상의 이면을 경고합니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 할지라도 법적 절차 없이
대중의 분노와 플랫폼 기업의 독단적인 기준으로 입을 막기 시작하면,
결국 사회의 기준이 극단적으로 경직됩니다.
오늘 악당을 처단했던 그 '입틀막'의 칼날이,
내일은 기득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정당한 비판'을 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표현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검열이 아니라,
더 좋은 표현(대항표현)이다."
4.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 그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불러내서 토론하자고 해도 그들은 나오지 않고,
자기들끼리 뭉쳐서 확증편향만 키우는데 무슨 대항표현이냐?"
그들은 우리의 광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응 전략이 필요합니다.
- '대항표현'의 전략적 침투:
그들이 우리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뭉쳐 있는 그 '확증편향'의 벽을 뚫고
우리의 메시지를 투입해야 합니다.
논리적이고 정교한 반박,
데이터에 기반한 팩트 체크가
그들의 알고리즘 공간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 - 건전한 공론장의 확장:
그들만의 리그(폐쇄형 커뮤니티)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적 공론장'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들이 뿌린 혐오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건전한 정보와 토론이 지배하는 공간을
우리 스스로가 더 매력적이고 강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침묵하는 다수의 깨어남:
그들이 뭉쳐 있는 이유는 '목소리가 큰 사람들'만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상식을 지키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침묵'을 깨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혐오와 가짜뉴스의 힘은 비로소 약해집니다.
결론: 우리가 만드는 광장
내가 정말 혐오하는 사람의 '말할 권리'까지 인정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광장으로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설득하거나 변화시킬 것인가?
"나쁜 표현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검열이 아니라,
더 좋은 표현(대항표현)이다."
검열의 칼날은 한 번 휘두르면 멈추기 어렵습니다.
대신 우리는 더 정교한 논리와 따뜻한 상식으로
우리의 광장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들이 뭉쳐 있는 그늘보다,
우리가 만드는 광장이 더 밝고 매력적일 때,
결국 혐오와 거짓은 설 자리를 잃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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