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편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들이
집값의 90%라는 거액을 대출해 주면서도
시장이 무너지지 않는 비밀을 알아보았습니다.
철저한 소득 심사(DSR), 징벌적인 보유세,
평생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장기 임대 시장이라는
'강력한 브레이크'들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 촘촘하고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을 보며,
"이건 국가가 시장을 억압하는 폭력이며,
당장 다 부수어야 한다!"라고
격렬하게 분노하는 거대한 경제 사상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중심 사상인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입니다.
그들은 왜 선진국의 이 똑똑한 안전장치들을 그토록 혐오하는 걸까요?
언뜻 들으면 정답 같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보이는 모순을 쉽게 풀어봅니다.
1. 무서운 보유세? "내가 내 돈 주고 산 집인데 국가가 왜 월세를 받나?"
신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가치는 바로
'사유재산권의 절대적 보호'입니다.
내가 땀 흘려 일해 정당하게 소득세를 내고,
그 남은 돈으로 집을 샀다면 그 집은 온전히 100% 나의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가지고만 있어도
매년 집값의 1~2%씩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합법을 가장한 약탈'과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내 집값이 오른 게 정말 오롯이 내 능력 때문일까요?
만약 내 집 주변에 국가가 세금으로 지하철을 뚫어주지 않고,
도로를 닦지 않고, 좋은 학교나 경찰서를 안 만들어줬다면 집값이 올랐을까요?
결국 집값이 오른 건
사회가 다 같이 공을 들인 덕분,
즉 '보너스(불로소득)'에 가깝습니다.
주변 인프라 덕분에 내 재산 가치가 올랐는데,
"그 인프라 유지비(세금)는 못 내겠다"고 하는 거죠.
2. 강력한 임대차 보호법? "세입자를 지키려다 임대 시장을 폭파했다"
법으로 임대료를 못 올리게 강제로 묶으면,
집주인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바꾸거나
다음 세입자를 받을 때 미리 가격을 크게 올려 받으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세 매물이 사라져 세입자의 부담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규제가 없으면 임대 시장이 평화롭고 안정적일까요?
주거는 명품 가방처럼 "비싸면 안 사면 그만인" 상품이 아닙니다.
주거는 인간의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시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최소한의 계약 기간이나
임대료 상한선 같은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개입하는 목적은
약자를 보호하자는 도덕적 온정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지키기 위한 냉철한 생존 전략입니다.
역사적으로 시장을 100% 방치했을 때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가계부채 폭발로
대공황이나 금융위기 같은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3. 칼 같은 대출 규제(DSR)? "돈은 은행이 빌려준다는데 국가가 왜 막나?"
신자유주의는 돈을 빌려주고 받는 것도
은행(공급자)과 개인(소비자)이 알아서 계약할 일이라고 봅니다.
은행이 위험을 감수하고 대출해 주겠다는데,
정부가 선을 그어놓고 "너는 연봉이 적으니 대출받지 마"라고
가로막는 것은 시장에 대한 오만이라는 거죠.
특히 소득(DSR)으로만 대출을 꽁꽁 묶어버리면,
가장 피를 보는 것은
'자산은 없지만 미래가 유망한 청년들'과
'소득 증빙이 어려운 소상공인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출을 무제한 허용하면
가계대출이 폭발하고
부동산 거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러다 거품이 터지면
은행이 망하고 국가 부도 위기가 옵니다.
평소엔 "간섭 말라"던 시장이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국민 세금)으로
인공호흡을 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나라 전체의 공멸을 막는
대출 규제를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론: 100% 순수한 신자유주의가 맞이한 비극
신자유주의자들의 말은 서슬 퍼렇고 논리적입니다.
"시장을 자유롭게 놔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최적의 균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 말을 100% 믿었다가 거대하게 매운맛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 금융 규제를 대거 풀었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정부가 감시망을 걷어내자
탐욕에 눈이 먼 은행들은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도
집값의 100%를 대출해 주었고,
결국 그 거품이 터지면서 전 세계 경제가 동반 파산할 뻔했습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먹'에 전 세계가 얻어맞은 셈입니다.
결국 오늘날 선진국들의 부동산 시스템은
신자유주의의 '시장 자율'을 존중하되,
인간의 탐욕이 폭주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촘촘한 브레이크(규제)를 함께 밟고 있는
아슬아슬한 타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의 자유가 먼저일까요,
정부의 안전장치가 먼저일까요?
정답은 없지만, 양쪽의 논리를 모두 이해할 때
비로소 지금의 부동산 정책들이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 그 이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 왜 미국·유럽엔 '영끌족'과 '전세 사기'가 없을까? (0) | 2026.05.20 |
|---|---|
| 부자도 저소득층도 다 울고 있다, ‘능력주의’라는 잔인한 덫 (0) | 2026.05.19 |
| 나랏빚 갚는 게 정답일까? 빚보다 무서운 건 '멈춰버린 소비' (0) | 2026.05.17 |
| 우리는 왜 '영끌'을 강요당했나? 신자유주의가 설계한 부채 지옥의 실체 (0) | 2026.05.17 |
|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자본주의 4.0' (0) | 2026.05.16 |